천사에게로 몰려간 사람들이 그를 덮쳐 바닥에 쓰러뜨렸다. 다들 그를 만지고 싶어, 그의 일부분이라도 갖고 싶어 안달이었다. 작은 깃털 하나, 날개 한 조각, 그 놀라운 불꽃을 두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졌다.-파크리트 쥐스킨트, <향수> 中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의 마지막을 기억한다. 소설 <향수>의 주인공이자 태생적인 애정결핍에 시달리던 작고 마른 남자의 마지막을. 단 한 번이라도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그는 살짝 뿌리기만 해도 황홀경에 빠뜨리는 궁극의 향수를 완성해낸다. 그가 향수를 머리부터 뒤집어쓰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르누이는 환희에 찬 사람들에게 단 한 조각도 남김없이 ‘먹힘’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사랑받았다. 이때부터였다. ‘먹는다’는 행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 것이. 생각을 거듭할수록 보통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단지 당장의 허기를 달래고 생명을 연장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내 입을 통해 온전히 받아들이는, 내 피와 살과 영혼을 채우는 ‘사랑’에 가까웠으니까. 그러자 자연스레 따라오는 의문. 나는 지금, 어떤 것을 먹고 있는가?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가? 어느 하나 신비롭지 않은 게 없더라 전북 부안, 저 멀리 격포가 아른대는 야트막한 언덕. 6월 바람에 금빛 밀이 나부낀다. 맞은편 텃밭에는 들깨, 도라지, 열무, 대파, 고추 등이 야무지게 심겼다. 비트, 치커리, 상추, 아욱, 겨자, 오크린 등 가문 봄을 이겨낸 잎채소도 푸르르다. 덩굴장미가 우거진 삼각 지붕 집 앞마당에 다다르자, 노오란 금계국과 연보랏빛 섬초롱꽃이 객을 반긴다. 언덕 위로 이어진 풀길도 심상찮다. 무화과, 석류, 자두, 앵두, 오미자, 머루포도…. 바지런히 여물어가는 보석들이 나뭇잎 사이사이 숨어있다. 이곳의 이름은 신비원. 농부 전세철 씨와 아내, 네 아이가 사는 ‘무투입 자연재배 농장’이다. “현재 농업은 크게 일반재배, 유기재배, 자연재배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일반재배는 관행농업이고, 유기재배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유기물 퇴비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흔히 ‘유기농산물’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유기물 퇴비’에도 함정은 있습니다. 동물성 분뇨 속 항생제라든지, 식물성 재료가 일반재배로 키워졌을 가능성이라든지…. 유기물 퇴비라도 지나치게 많이 주면 1급 발암물질인 질산염 등의 문제가 생기거든요.” 자연재배는 ‘땅의 힘’을 회복시키는 데 집중하는 방식이다. 작물 스스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농약, 제초제, 비료 등 독성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는 것. 사람으로 따지면 ‘자가면역’을 키우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땅도, 작물도 점점 건강해지고 이를 먹는 동물과 인간에게도 선순환을 일으킨다. 언뜻 듣기엔 완벽해 보이지만, 공장형 농장에 익숙해진 도시인으로써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 정말 농약도, 비료도 없이 농사가 가능할까? “자연비료(천연퇴비)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에요. 독성이 없는 퇴비를 만드는 것이 지금 환경에선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제대로 키운 작물은 썩지 않습니다. 자연재배로 키운 잎채소를 그늘에 두면 낙엽처럼 말라요. 말랐다가 다시 수분을 머금고 분해되면서 자연으로 돌아가죠. 건강하지 않은 농산물은 마르지 않고 무릅니다. 썩는 거죠. 냄새가 안 좋을수록 독성이 많다는 뜻이에요.” 전세철 농부는 이어서 수분이 많은 과일에 대해서도 비교했다. 자연재배로 키운 과일을 그대로 두면 발효가 돼 알코올과 식초, 물의 과정을 거쳐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 반면 일반재배로 키운 과일은 물러지면서 썩는다고 한다. “쌀도 마찬가지예요. 집에서 쌀을 물에 담가보세요. 자연재배 쌀은 천천히 술이 되면서 식초가 될 거예요. 그렇지 않은 쌀은 썩는 냄새가 나면서 시커멓게 곰팡이가 필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친환경’으로 부르는 유기농산물도 이렇다는 게 지금 문제인 거죠.” 어떻게 살 것인가 전세철 농부가 변산에 자리를 잡은 지 벌써 30여 년. 처음부터 자연재배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전북 임실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 어깨너머로 농사를 돕긴 했지만, 농부가 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회사에 다녔어요. 매일 만원버스에 시달리며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고요(웃음). 줄곧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 것 같아요. 그러다 한 유기농공동체로 이직을 했는데, 이때 유기재배 공부를 거의 다 한 셈이죠.” 유기농공동체를 그만두려던 즈음, 누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변산에 집을 지으려는데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인생의 흐름’에 따라 변산에 내려왔고, 유기재배를 하는 누나를 따라 300평짜리 밭을 얻어 처음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농사를 하면서 계속 책을 읽었어요. 재미있게도 읽고 싶은 책이 계속 변하더라고요. 돌이켜보면 세상을 이해하는 순서였던 것 같아요. 맨 처음엔 연애소설로 시작해 탐정소설을, 그다음엔 SF소설을 실컷 봤죠. 그러다 우주, 예술, 정신세계로 장르가 넘어가더군요.” 그 무렵, <녹색평론>에서 ‘풀 멀칭(mulching)’을 접하게 됐다. 비닐 대신 전통 방식으로 볏짚, 보릿짚, 목초 등으로 땅을 덮어주는 것. 비료를 주지 않고도 땅에 영양분을 공급하면서 토양을 보호할 수 있는 자연 그대로의 방식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내와 함께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어떻게 건강하게 잘 키울 수 있을까. 우리의 결론은 ‘농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죠. 자급자립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작물을 키우자. 우리의 목적은 자연재배가 아닙니다. 우리 가족이 건강한 농산물을 먹기 위한 방편 중 하나가 소농과 자연재배였을 뿐이지요.” 소농의 첫째 정신이 순환하는 삶이라면, 두 번째 정신은 자립하는 삶이다. 자립은 자급에서 출발한다. 자급능력이 자립의 기초가 된다. 먹을거리도, 입을거리도, 교육도, 건강도, 놀이도, 문화도, 노동력도, 자급률을 일정 부분씩 때로는 100% 이상 확보하는 삶이 소농의 삶이다. 에너지, 물, 맑은 공기도 자급체제를 갖추고 재난에 대비하는 체제가 소농의 삶이다. -전희식, <녹색평론> 제125호 ‘소농, 이것이 진짜 혁명이다’ 中 첫 수확까지의 기다림은 길고 길었다. 일반재배로 인한 땅이 다시 비옥해지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팔기 위함이 아닌 먹기 위해 시작한 것이라 버틸 수 있었다고, 전세철 농부는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신비원을 찾았다. 유기농 채소를 먹어도 몸이 아파 자연재배 농장이란 소문을 듣고 물어물어 찾아온 것이었다. 그가 신비원 농산물을 먹고 안 아픈 것을 보고 ‘제대로 키웠구나’ 확신이 들었다고. 그때부터 자급을 바탕으로 하되, 조금씩 남는 농산물을 팔 수 있었다. 들이는 시간과 수고로움에 비해 수확량이 넉넉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누구나 살 수 있는 일반 작물과는 조금 다르다. 가격도 마찬가지. 결국 서로 타이밍이 맞고 ‘절실한’ 사람들만 남았다. “일반재배는 물론이고 유기농 작물보다도 가격이 나가니까요. 게다가 건강이 정말 안 좋아서 먹자마자 변화가 눈에 띄게 오지 않는 이상 단시간에 큰 차이는 못 느낄 수도 있고요. 우리야 최대한 좋은 걸 보낸다고 하지만 벌레 먹었지, 질기지, 단단하지, 못생겼지…. 마트에서 보던 작물하곤 많이 다르잖아요(웃음).” 마늘은 마늘답게, 양파는 양파답게 인연이 닿아야 먹을 수 있는 신비원의 작물. 6월의 신비원은 마늘과 양파 수확이 한창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마늘은 흔히 ‘육쪽마늘’이라 불리는 한지형 마늘과 난지형 마늘인 대서마늘(스페인마늘), 남도마늘이다. 부안은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난지형 마늘의 한계선이기도 하다. “바다 근처에서는 대파, 양파, 마늘처럼 매운 작물을 주로 해요.” 전세철 농부의 설명을 들으며 마늘밭을 돌아봤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가지런히 누워있는 마늘이 보기에도 ‘고놈 참 맵겠다’ 싶었다. 올봄이 워낙 가물어서 알이 작게 나왔다며, 전세철 농부가 마늘을 덥석 까더니 반지르르한 한 쪽을 불쑥 들이민다. 솔직히 잠깐 망설였음을 고백한다. 봄은 가물었고, 날은 뜨거웠고, 돌아갈 길은 멀었다. 마스크 속에서 진동할 마늘 냄새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보기만 하고 말로만 듣는 건 의미가 없어요. 맛과 향의 차이를 알 수가 없어.” 에라이.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쑥과 마늘만 먹고 100일을 버틴 웅녀의 아들, 단군의 후예 아닌가. 1인당 마늘 소비량이 6kg이나 되는, 냉장고에 다진 마늘만 떨어져도 불안에 떤다는, 세계 최대의 마늘 소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사람답게 갓 깐 마늘을 입에 품었다. 아삭아삭. 씹는 맛은 사과요, 먹는 맛은 마늘이요, 달큰하면서 아릿한 잔향은 그리움이어라. “우리 식구는 맨날 먹으니까 잘 몰러. 그래서 가끔 ‘불량식품을 먹어야 한다’고 그래요. 좋은 걸 잊어버리니까(웃음).” 맨날 불량식품만 먹는 나로선 공감하기 어려운 사치라고나 할까. 마늘을 먹어보니 비로소 알겠더라. 자연재배는 본래의 것을 찾는 것이라는 걸. 마늘이 품은 고유한 능력, 마늘의 향과 맛과 힘을 되찾는 것이라는 걸. 그렇게 우리는 즉석에서 맛보는 ‘팜투어(farm tour)’를 떠났다. 얼려 먹으면 셔벗보다 훨씬 맛있다는 보리수 열매부터 특별한 손님에게만 대접한다는 준베리(Juneberry),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뽑아먹었던 덜 여문 당근, 11살 막내가 아껴먹는다는 노지 딸기…. 어느 것 하나 싱싱함이 춤을 춰댔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딸기였다. 아홉 살, 목장 이모네에서 먹었던 딸기를 기억한다. 쇠꼴을 열심히 모은 상으로 밭에서 따주신 딸기가 뜨끈한 것에 놀랐고, 줄줄 흐르는 과즙에 놀랐더랬다. 마트에 진열된 것과는 다른 야생의 맛. 신비원의 딸기는 그날의 경험을 소환했다. “오늘 먹은 것들의 맛과 향을, 잘 기억하는 게 좋을 거예요.” 참으로 오랜만에, 마늘다운 마늘과 딸기다운 딸기를 먹었다. 사랑으로 충만해졌다.